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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고

창업할 결심
- 페블러스 실전 창업기-

글 : 이주행 대표/공동창업자((주)페블러스) / joohaeng@pebblous.ai

조회수559

1. 들어가는 글

 얼마전 휘닉스파크에서 성황리에 종료된 제28회 한국CDE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는 학회 30여년 역사상 최초로 창업을 주제로 하는 세션이 열렸다. “창업할 결심” 세션에는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를 소개하는 두분의 투자자를 모셨고, 또한 최근에 스타트업을 창업한 초보 사업가의 실전 창업기를 소개하였다. 그 초보 사업가는 다름아닌 이 글의 저자이다. 아래에서는 이때 소개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다시 들려드린다.

 창업기에는 <데이터의 진심을 향한 여정>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연대기 순으로 구성된 여정은 창업기 발표일인 2023년 2월 9일을 기준으로 지난 12,022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데, 이는 약 33년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이제 1년 남짓된 초보 창업가의 창업 여정으로는 매우 과하다. 사실은 대학생 시절에서 ETRI 연구원을 거친 지난 나의 경력들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 준비 기간, 꽤 길었던

 나는 1990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를 입학해서 1999년 8월에 컴퓨터그래픽스를 전공하고 박사를 졸업하기까지 3,471일, 약 9년반의 대학과 대학원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 때 수학적인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매료되었고, 시각적인 출력물들에 대해서도 수련할 기회가 생겼던 것 같다. 공학자로서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절이었다. 이 시절 나는 창업을 꿈꿔 본적이 없다. 나는 연구와 공부가 매우 재미있었고, 꽤 잘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에는 아마도 학계에 진출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박사학위를 졸업하고 병역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박사특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대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비교적 자유도가 높을 것 같은 정출연을 선택했다. 그래서 ETRI를 선택했고 1999년 9월 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조용한 몰입에 익숙해 있던 나는 연구소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매우 낯설었다. 과감한 질문과 도전이 허용되는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와도 거리가 멀었다. 연구 예산을 제어하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구 용역을 하는 곳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에 막 가족을 꾸리고 어린 아이들과 생활하던 나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가능하다는 정출연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게다가 입사한 연구팀은 다른 연구팀에 비해 연구 자유도가 조금은 보장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정출연의 생활에 어느덧 적응이 되어 갔다.

 그러다가 가끔씩 정신을 차리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당시의 연구소 분위기에서는 그닥 장려되지는 않았지만 연구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름 논문도 열심히 썼고 좋은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연구소 시절의 내 연구를 인정해 주고 논문상 수상의 기회를 준곳이 바로 한국CDE학회 이기도 하다.

 ETRI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2000년부터 한국CDE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팀의 선배이자 팀장으로도 지내신 김현 박사님이 CDE학회로 이끌어 주셨다. 나는 산학연의 연계가 잘 되어 있고 선배님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CDE학회에 금방 매료되었고 매년 거르지 않고 학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학회20주년 기념준비위원장을 역임했고, 학회에서는 유일하게 두 차례의 가헌학술상을 수상하였다.

 보람된 CDE학회 활동은 연구소 생활에서 큰 활력이 되었다. 덕분에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서 삶과 연구에 영감을 받았고, 인맥을 넓힐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자극들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매해 초 새해 결심을 적는다. 그러다가 2010년 무렵부터는 “독립을 준비하자”는 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번 뿐인 내 삶을 완전히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된 연구자가 아니라 기계 부속같은 역할을 하는 정출연 연구자의 삶에서 오는 회의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독립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의 숙제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한창 공부를 하는 나이였고, 아무래도 정서적이고도 가정적인 안정이 필요한 시기였다. 나의 목표를 위해 가족의 평안한 삶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해 독립을 “준비”만 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3. 창업할 결심, 마침내

 그러다가 독립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 왔다. 2020년 겨울에 모바일 로봇 스타트업인 (주)트위니의 천홍석 대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천대표는 나 같은 사람이 왜 연구소에 그러고 있느냐, 쫄지 말고 창업해라,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며 특유의 직설적이고 화법으로 나를 자극했다. 이제 50대에 접어 들었고, 아이들에 대한 숙제도 다 끝난 시점에서 천대표의 자극은 매우 유효했다.

 독립을 결심할 마지막 기회가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창업이 목표는 아니고 독립이 목적이었는데 나이 50이 넘어 <코드로 그린 그림>1 예술가로 살기도 그렇고 다른 독립의 수단이 마땅치도 않았다. 그래서 일단 창업을 독립의 수단으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2021년이 1월 1일 부터 앞으로 딱 3개월만 숙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당시는 COVID-19으로 한창 재택근무를 하는 시절이어서 직장이라는 조직을 떠나 있는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면역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4월 1일이 되었을 때 결국 나의 최종 결정은, “창업한다”였다. 앞으로의 50년은 온전히 나로 살아 보자는 것이었고, 80세 할아버지가 되어도 미련이 남지 않을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1 <코드로 그린 그림>이란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해왔다. 2020년 대전 비엔날레 초청작가이기도 하다. 창업한 회사에는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4. 창업 실행, 일사천리

 4월 1일 나는 창업을 위한 첫번째 액션을 취했다. 내가 그동안 연구소에 봐왔던 최고의 인재이자 나의 뜻을 가장 이해할 것 같은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나 창업할 것 같애.” 짥은 카톡 메시지를 보냈고, 답이 왔다. “와, 설레인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답을 보냈다. “그럼 같이 설레여 봅시다.” 그렇게 간단하게 창업팀이 결성되었다. 4월 1일 만우절의 거짓말 같은 도원결의는 바로 현재의 공동창업자이자 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원 박사와 함께 였다.

 창업 아이템은 우선은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로 삼았다. 연구소에서 오랬동안 해왔던 일이고 시대의 흐름에도 맞는 것 같았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했다. 그것은 바로 “데이터로서의 나”이다.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일상을 기록하는 나름의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고, B2B를 위한 합성데이터로 안정적인 첫 괘도를 만들면 좀더 도전적인 개인 데이터 큐레이션으로 B2C 시장에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창업 결심이후 가장 뭉클한 순간은 회사의 이름을 만들고 선언문을 작성하던 때이다. 창업자들은 <사용자와 데이터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을 사명으로 삼기로 했다. 과학적이고도 예술적인 관점에서 데이터를 가공해서 고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는 창업자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첫 창업이다보니 창업자의 주관적인 선호들이 회사에 많이 반영되었던 것 같다. 온전히 나로서 살기로 한 수단으로서의 창업이 회사의 성격에도 반영된다.

 우리의 비전을 담는 회사 이름도 어렵지 않게 결정되었다. 흔히들 데이터가 모래알처럼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 모래알 같은 데이터는 손으로 잡을 수 없어서 다루기가 어렵다. 대신 우리는 조약돌처럼 꼭 쥘 수 있는 그런 데이터를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조약돌은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영어로 fabulous pebble이었고, 이를 합친 pebblous 페블러스가 사명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페블러스의 <데이터의 진심>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창업 실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연구소에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지원을 하여 통과하면 유급 창업 준비기간을 거쳐 창업 휴직이 가능했다. 최대 6년간 휴직이 보장된다. 월급이 나오지는 않아서 배수의 진을 치고 사업을 해야 한다. 다행히 연구소의 큰 지지를 받으며 창업휴직 프로그램을 승락받았다. 몇 천만원의 지원금도 제공되어서 필요한 기자재와 비품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연구소에서는 창업할 우리 회사에 투자도 검토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회사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투자는 고사하게 되었다. 연구원 창업이라고 해서 투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건 아니어서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다행히 공동창업자 이정원 박사는 소셜 네트워크가 좋은 사람이어서 우리의 창업 결심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고, 대전을 근거로 한 몇 군데 초기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중에서 우리는 카이트창업가재단을 리드 투자사로 선정했다. 특히 연쇄창업가이신 김철환 이사장님이 흔쾌히 초기 밸류를 창업가가 원하는 수준으로 받아 주셨고, 마음이 웅장해 지는 창업가의 기백을 불어 넣어 주셨다. 초기 투자를 확약 받은 이 때가 창업 결심후 약 3개월 후인 7월 초였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창업지원 연구비 수주를 준비했다. 먼저 예비창업패키지를 수주했다. 약 5천만원의 초기 개발비를 지원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다음으로 팁스 과제다. 팁스는 초기 창업자들이 사업화를 위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정말 좋은 소스였다. 보통은 창업 후 1-2년안에 받게 되는데 우리는 창업전에 과제를 수주했다. 이는 창업 결심 후 7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제 법인을 설립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추가적인 시드 투자를 로우파트너스와 자이언트스텝에서 유치했고 2021년 11월 10일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약 6개월간의 창업 준비를 마치고 연구소를 휴직하게 되었다. 휴직 시점에서 나는 연구소를 8,095일 다녔다. 22년이 조금 넘는다.




5. 데이터의 진심을 향한 여정

 창업한 (주)페블러스는 글을 쓰는 시점인 2월 21일 오늘 468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1년 3개월째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 사이에 회사는 부쩍 성장했다.(배밀이를 하던 아기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수준이기는 하다.) 창업할 때 공동창업자를 포함해서 3명이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4대보험 기준으로 임직원이 19명이 되었다. 여기에는 인턴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순수한 직원으로는 파트타임을 포함해서 11명 가량이다. 채용 공고를 통해 뽑은 직원은 한명도 없다. 창업자들이 맘에 들어서 직접 모신 분들, 좋은 회사라고 지인들이 소개해서 오신 분들 또는 기존 직원들이 직접 소개해서 온 경우들이다. 당분간은 이런 성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11월 초기 투자 유치 이후에 추가적인 시드 투자를 2022년 4월에 포스텍홀딩스를 통해 받았다. 그리고, 코리아에셋, 현대자동차 제로원 펀드, 기업은행, 로우파트너스, 자이언트스텝에서 Pre-A 라운드 투자를 10월에 유치했다. 회사 설립 약 1년만의 일이다. 투자 경기가 매우 차가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투자해 주신 분들은 페블러스의 데이터의 진심을 응원해 주는 분들이라서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든든한 투자 덕에 용기백배이다.

 고객들도 많이 만났다. 사실 초기 1년에는 고객이나 매출 보다는 핵심 가치를 연구개발하는데 쓸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창업전 준비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보다는 우리에게 부족한 시장을 읽고 싶었다. 현대자동차와 직접 계약을 맺어서 POC 과제를 수행했다. 대기업의 핵심적인 데이터를 관찰하고 다루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기업은행의 금융권 데이터, 자이언트스텝의 메타버스 관련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 바우처 사업을 통해 만난 네 군데 기업의 소중하고도 흥미로운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코드로 그린 그림> 예술가로서 페블러스 스튜디오 작업도 계속했다. 광주과학관 AI 전시장에도 데이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납품했다.

 시장을 통해 우리는 고객을 응대하고 데이터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여러가지 면모를 배울 수 있었다. 연구소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내가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고객의 마음에서 진심으로 그들의 데이터를 다루고, 이해하고, 개선하면 된다. 사업도 경영도 배운바가 없으니 본능으로 임하는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연구개발도 꾸준히 했다. 포스텍 조성현 교수님을 투자자이가 기술고문으로 모시고 합성데이터 원천기술을 연구했고, 올해는 제법 규모있는 정부연구과제도 도전하고 있다. 성균관대 이성길 교수님도 기술고문으로 참여하셨다. 자이언트스텝과는 메타버스 디지털휴먼에 관련된 원천 기술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현대 자동차 POC 과제를 통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실전 합성데이터를 생성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창업하고 재미있는 습관이 1년전의 오늘을 돌아 보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게 놀랍다. 내년의 오늘이 어떨지 생각하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매우 멋질 것 같다고 예상한다. 처음가는 사업의 길은 저 멀리 하늘에 보이는 희미한 별을 보고 따라가는 여행자와 같다. 사막과 물을 건너며 중간에 넘어지고 아픈일도 많을 것 같지만, 툴툴 털고 가는 수밖에 없다. 독립의 꿈을 위해 시작한 여정이 어디 쉽고 달콤하기만 하겠는가.




6. 창업할 결심, 그 후

 한국CDE학회 동계학술대회의 <창업할 결심> 세션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표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창업하기는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나로서 살 수 있는 경험은 어린 시절 이후의 처음인 것 같다. 설레이기도 하지만 힘들어서 심장이 달리 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에게 이런 심장이 있었나 할 정도로 놀라기도 한다. 다행히 이런 놀라운 경험을 몸으로 겪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관조하고 응원하는 내가 같이 움직이고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여유는 장년 창업자의 몇 가지 안되는 장점이다. 그 외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 창업가의 뜻에 다양한 응원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초기 창업 기간 동안에는 아무래도 창업자의 역량이 크게 좌우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학창생활과 연구원 생활의 긴 준비기간 덕에 관성으로 잘 굴러갔는데 앞으로가 문제다. 수 많은 고민이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초심이다. 설레이고도 결의에 찬 독립의 의지와 창업 결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과 방향에 맞게 유연하게 진화할 수도 있어야 한다. 모순적이지만, 유연하고도 강건한 마음은 창업자의 중요한 덕목이고 이를 위해 수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돈도 벌고 성장도 하지 않을지 희망해 본다.

 마지막에 적은 것은 “이 길의 끝”에 대해서다. 지도도 없이 처음 가보는 길에 그 끝을 알 수는 없다. 육체적인 한계로 마라톤을 포기하는 선수도 있고, 불굴의 의지로 종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어떻게 페블러스의 끝을 맞을지 알 수 없다. 다만 페블러스와 상관없이 “독립의 길”은 계속될 것 같다. 연쇄창업가이자 자본가로 그 길을 가게 될지, 100년 기업 페블러스를 일구어 그 안에서 독립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씁쓸하게 복기를 하고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렇게 그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으니 오히려 진정한 독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된다.

 이상에서 간략한 실전 창업기를 마칠까 한다. “창업할 결심” 세션에서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드렸지만 숨겨진 이야기도 많다. 궁금하신 분들 연락 주시라. 그리고 여러분들의 “창업할 결심”은 안녕하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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