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마트시티 전문가입니다. 스마트시티라는 용어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드리면, 온도습도센서같은 IoT 디바이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최신 IT기술을 활용해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시민 삶의 질을 개선하며, 도시의 경쟁력 제고를 도모하는 도시계획 또는 정책의 한 방법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시간 CCTV 모니터링을 통한 범죄 예방, 빅데이터 및 AI 분석을 통한 도로 혼잡 문제 해결 등이 스마트시티 방법론을 적용한 사업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3년 도시계획박사학위 취득 후 IT기업에 입사하여 국내외 사업 개발과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고, 공공기관, 민간기업, 대학, 스타트업 등을 대상으로 한 자문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현업에 있다 보면, 변화하는 산업의 추세를 알 수 있는데,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건설산업분야, 즉 건축가, 도시 계획가 분들의 증가하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심입니다. 관련하여 도시(건축)공간과 스마트시티 솔루션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었는데, 본 기고를 통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도시(건축)공간 창조의 목적: 인구유입
도시계획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스의 형태와 공간의 구조화부터 시작하는 건축과 달리, 계획인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계획인구란 새로운 도시를 계획할 때, 해당 도시에서 수용할 인구규모를 말합니다. 도시계획에서는 계획인구를 토대로 주거지구, 상업지구, 업무지구, 상하수도나 학교 같은 도시기반시설 등의 필요 규모를 산정하고, 이를 근거로 주거단지가 얼마나 필요할지, 건물들의 높이는 얼마나 되어야 할지 등 도시를 구체화합니다. 개발된 도시들은 계획 인구 대비 실제 정주 및 유동인구 규모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그 격차를 토대로 도시의 발전방향을 정기적으로 재조정하거나 현행화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해석해보면, 도시공간 창조의 목적은 해당 공간의 규모에 맞는 상주 인구와 유동 인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친근하게 표현하면,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도시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인구가 증가하면 세수가 증가하고, 공공기관은 증가한 세수를 통해 더 나은 도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으며, 도시의 정주환경 개선으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 시민들은 자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도시에 레스토랑, 쇼핑몰 같은 즐길 거리가 늘면,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면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유동인구도 증가하여, 상업 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세수 증가로 이어지며, 도시발전의 선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건축공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실내외 공간 창조 및 연출을 통해, 입주민이나 입주기업을 유치하고, 또한 즐길 거리에 대한 적정한 구성을 통해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어야 성공한 건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도시 및 공간창조의 동인은 사람을 어떻게 끌어 모을 수 있을까 에서 시작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인구유입의 성공 전략: 도시(건축)공간 브랜딩
어떻게 사람들을 도시(건축)공간에 유인할 수 있을까? 관련하여, 최근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도시 브랜딩 또는 플레이스(Place) 브랜딩입니다. 두 용어가 비슷한 맥락의 정의를 갖고 있는데, 도시라는 단어가 다소 광범위한 점, 개인적으로 브랜딩의 대상에 도시공간과 건축공간이 함께 고려되었으면 하는 점을 고려, 저는 도시(건축)공간브랜딩이란 단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도시(건축)공간 브랜딩이란 도시(건축)공간의 특성을 살려 도시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도시(건축)공간브랜딩은 오늘날 도시 인구유입을 유인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인구성장의 변곡점에 있고, 이는 도시와 건축에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구는 증가하고, 주택 등 인프라는 부족했던 시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시대에 신도시나 신축건물을 대상으로 한 입주경쟁은 치열한 부동산 호황을 누렸었습니다. 최근,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외곽도시들은 소멸의 위험에 처해 있고, 빈집과 빈건물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큼 충분한 매력을 갖추지 못한 도시와 건축물, 도시(건축)공간 브랜딩에 성공하지 못한 도시들은, 조금 과장해서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도시(건축)공간브랜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시브랜드담당관, 도시디자인단 같은 관련 조직을 신설, 운영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도시(건축)공간 브랜딩이 현업에서 인구유입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도시(건축)공간브랜딩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빌바오효과"라는 용어로 회자되는 사례입니다. 빌바오시는 스페인의 한 항구도시인데, 1970년대 번창하다가, 1980년대 제조업의 쇠퇴와 함께, 높은 실업률과 환경오염으로 쇠락하던 도시였습니다. 반전은 20세기 최고의 건물이라는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이 1997년 개관하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현재 빌바오는 문화도시로,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1970년대 활황기 이래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 이렇게 한 랜드마크가 도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빌바오효과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빌바오효과와 유사한 공간 브랜딩 성공사례들이 있는데, 서울에 특히 많습니다. 빌바오시를 벤치마킹하여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하디드의 설계로 구축한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나, 도시 한가운데 조성된 생태공원 청계천, 왕복10차로의 세종로의 일부를 개조하여 구성한 광화문 광장 등입니다. 이들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 서울시민에게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 유입으로 도시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인근지역의 유동인구 증가로 주변지역 상권 활성화, 부동산 가치의 상승도 가져왔습니다.
[사진]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출처: 구겐하임 뮤지엄 제공, 위키피디아 커먼즈)
빌바오시는 구겐하임 뮤지엄 유치와 함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건축)공간브랜딩을 위한 랜드마크 소재: 스마트시티 솔루션
저는 스마트시티 솔루션을 도시(건축)공간 브랜딩을 위한 랜드마크로 제안 드립니다. 스마트시티 솔루션이란 IT기술을 접목 또는 융합한 도시서비스를 말합니다. CCTV를 포함한 각종 환경 IoT센서를 설치하여 실시간 도시환경 및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스마트폴이나, 냉난방기는 물론 공기정화기능 등이 탑재된 스마트버스쉘터, 최신 IT기술을 활용해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안전,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스마트경로당, 대형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별화된 공간경험을 제공하는 스마트 사이니지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도시(건축)공간과 스마트시티 솔루션의 밀결합을 통해 도시(건축)브랜딩에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스마트시티 솔루션의 한 종류인 스마트팜기술을 도시공간과 융합하여 구축하여 2020년 문을 연 네이처어바인(Nature Urbanine) 시티팜입니다. 이 스마트팜은 축구장규모와 맞먹는 1만4000제곱미터의 면적으로, 10종 이상의 작물이 경작되어, 주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농작물이 공급되고, 투어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정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 공간은 파리 엑스포 포르트 드 베르사유의 옥상 리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건축회사 발로드앤피르스트(Valode & Pistre)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시티팜 성공사례를 토대로 파리는 시내 시티팜의 확산을 다양한 정책에 추진 중에 있고, 10~20년 후 사뭇 달라질 파리의 미래모습이 기대됩니다.
[사진] 프랑스 파리 네이처어바인 도심농장 전경 (출처: AFP 연합뉴스)
파리시는 유럽 최대규모 옥상 도심농장(시티팜)을 구축했다. 본 사업은 건축사에서 설계한 건이며, 이후 파리시는 시내에 시티팜 확산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최근에 영종도에 개장한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 가보셨다면 스마트사이니지 솔루션이 공간에 부여하는 힘을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인스파이어는 동북아 최대규모 복합리조트인데, 출입구에서 로비를 거쳐 복합몰에 이르는 150m에 달하는 거리의 천장과 벽면을 LED 디스플레이로 장식해 국내 최대 규모 미디어아트를 선보였습니다. 이 솔루션 덕분에, 인스파이어리조트는 개장하자마자 않은 인파가 리조트에 몰려들었고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
네이버에서 최근에 준공한 제2사옥인 네이버 그린팩토리(1784) 역시 건축공간과 최신 IT기술들과의 밀결합을 통해 건축공간을 브랜딩한 사례입니다. 4차신기술에 해당하는 클라우드, 5G, 로봇,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AI, 비전, 음성인식, 모바일, 빌딩인프라 등 다양한 기술들이 건축물의 기획단계부터 고려되어 구축되었습니다. 네이버 그린팩토리는 IT기술과 건축의 브랜딩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는 멋진 미래건축 랜드마크가 되어, 개방 후 2022년 12월 기준 반년만에 51개국에서 2천500여명이 건물을 방문했고, 세계 최대 도시프로젝트인 네옴시티를 준비하고 있는 빈살만 사단도 그 방문객에 포함됩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네옴시티에 대한 세계적인 주목의 원인도 도시(건축)공간 브랜딩 관점에서 해석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옴을 구성하는 3개의 프로젝트 중 제일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길이 170km, 높이 500m, 너비 200m의 선형도시를 구축하는 더라인프로젝트(The Line Project)입니다. 더라인프로젝트는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15분도시의 미래버전으로 UAM(Urban Air Mobility), 초고속 엘리베이터와 에스칼레이터, 하니퍼루프 같은 미래모빌리티의 테스트베드가 될 것입니다. 미래모빌리티와 함께 롯데타워 높이의 건물을 과연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어떠한 최신 IT기술들로 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할까라는 호기심이 미완의 도시를 향한 기대감을 촉발했고, 결국 그 성패와 상관없이 네옴시티는 스마트시티솔루션과 기술에 도전하는 디자인으로 도시브랜딩에 성공한 도시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사진] 네옴시티의 더라인프로젝트 실내 조감도 (출처: 네옴 홈페이지)
더라인시티가 준공되면, 사람들은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km공간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전례없는 도심환경을 어떤 최신기술로 구현할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마치며
스마트시티솔루션들의 현재 지위는 도시나 건축공간을 차별화 할 수 있는 핵심 주제라기보다는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편리한 기반 인프라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통상적으로 도시나 건축공간이 설계되면, 정주 또는 유동인구의 동선, 편의성, 규제들을 고려하여, 전기차충전소, 스마트폴 등 선별한 스마트시티 솔루션들이 도시(건축)공간 내 최적위치에 배치 및 설계, 설치하는 수순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관점에서 스마트시티솔루션이 도시(건축)공간의 구조화에 큰 영향력을 줄 수도 있는 랜드마크 소재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UAM 정거장과 그 확장된 서비스가 공간과 밀결합한 도시(건축)은 어떤 모습일까요? 로봇기반의 생활물류기능이 도시(건축)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면, 공간은 어떤 형태로 구조화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과정에는 건축규제, 기술의 불확실성, 발전속도 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만 한다면, 과거 국내 건설사가 성공적인 초고층건물 구축경험을 토대로 해외에 진출했던 것처럼, IT기술과 밀결합한 도시(건축)설계 및 구축경험이라는 차별화된 역량을 가지고, 국내 건설산업 관계기업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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